일제강점기 서울의 거리 명칭 변천사를 통해 공간에 새겨진 식민 통치의 흔적과 해방 이후 복원의 의미를 살펴봅니다.
오늘날 서울을 걷다 보면 친숙한 거리 이름들 속에 낯선 과거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종종 놓치곤 한다. 바로 일제강점기(1910~1945) 동안 일본 제국은 서울의 골목과 거리 이름까지도 자신들의 통치 논리에 맞게 바꾸며 식민 지배를 강화했다. 이 글에서는 일제강점기 시기 서울(경성)의 주요 거리 명칭들이 어떻게 변화되었고, 어떤 배경에서 만들어졌는지를 살펴본다.
1. 경성으로 바뀐 서울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일본은 조선의 수도였던 ‘한성’을 ‘경성(京城)’으로 개칭했다. 이는 일본 왕정 중심의 '경도(京都)', '동경(東京)'과 유사한 형식으로, 조선을 ‘일본 제국의 일부’로 흡수하려는 정치적 상징이기도 했다.
2. 조선 총독부 중심의 거리 체계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일본은 경성을 '근대적인 도시'로 만들겠다며 대대적인 도로 정비를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전통적인 골목 이름은 폐지되고, 일본식 도로 체계와 명칭이 도입되었다.
대표적인 일본식 도로 명칭 체계:
- 도로를 ‘정(町, 마치)’ 또는 ‘통(通)’으로 표기
- 거리 방향에 따라 ‘남대문통’, ‘종로통’, ‘황금정’, ‘영락정’ 등으로 개명
- 번호 방식으로 지역을 세분화: ○○정 1정목, 2정목 등
3. 주요 도로 명칭 비교
다음은 오늘날의 주요 서울 거리들이 일제강점기에 어떤 명칭을 가졌는지를 정리한 표다.
현재 명칭 | 일제강점기 명칭 | 주요 특징 |
---|---|---|
종로 | 종로통 (鍾路通) | 경성의 중심 대로, 일본식 건축물 밀집 |
명동 | 명치정 (明治町) | 일본인의 주요 상업 지구 |
충무로 | 혼마치 (本町) | 행정 및 상업 중심지 |
을지로 | 게이죠 통 | 공업·인쇄업 중심지 |
서대문 | 니시몬 (西門) | 교외 행정 연결 도로 |
청계천변 | 황금정 (黃金町) | 일본 상인들과 요릿집 밀집 지역 |
4. 거리 이름에 담긴 정치적 의도
일본은 단순히 도로만 정비한 것이 아니라, 거리 이름을 통해 정체성과 지배권을 시각적으로 각인시키려 했다. ‘명치정’은 일본 천황 메이지의 이름을 따왔고, ‘혼마치’는 일본의 ‘본점 거리’라는 의미로 제국의 중심을 상징했다. 즉, 거리 이름은 일본의 통치 이념을 조선 땅에 주입하는 수단이었다.

5. 해방 이후 복구된 고유 지명
1945년 광복 이후, 서울은 일제의 흔적을 지우고자 거리 명칭을 한국 고유 명칭으로 환원했다. ‘명치정’은 ‘명동’으로, ‘혼마치’는 ‘충무로’로 바뀌었으며, 일부는 전통적 명칭이 복원되었고, 일부는 새로운 도시 계획에 따라 개편되었다.
그러나 도시의 구조, 길의 방향, 건물 배치 등은 여전히 일제강점기의 도시 설계 틀을 따르는 경우가 많아, 서울의 도시 공간 속에는 그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결론: 이름이 말해주는 서울의 역사
일제강점기의 서울 거리 이름들은 단지 표지판의 변화가 아니라, 역사의 침탈과 저항의 상징이다. 해방 이후 복원된 거리 이름들은 단절된 과거를 복구하고, 공간에 담긴 민족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과정이었다. 오늘날 서울을 거닐며 눈에 익은 거리 이름들을 다시 바라보면, 그 속에 숨은 역사적 층위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